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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마태복음

“이머, 이건 꼭 읽어야 해!”

 전 마태복음을 번역하면서 ‘성경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놀랐다기보다 그건 사실 충격이었습니다!

이 번역 과정이 제게 너무 큰 은혜였던 이유는….

혼자서 배를 잡고 웃기도 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하기도 하면서….

정말 마태복음은 세상의 그 어떤 책과도 견줄 수 없는 재미와 감동, 의미와 교훈을 주는 <불후의 명작>임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죠.

 

마태복음을 번역하면서 저는 또 여러 번 놀랐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정말 ‘스토리텔링의 귀재이시다’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어쩜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나가시는 지, 마치 어릴 적 할머니 무릎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대감과 설레임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이야기가 재미만 있다면 그건 무협지 만화책이나 크게 다를 게 없겠지요.

예수님 이야기에는 재미뿐 아니라, 하나님 왕국의 비밀과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힘이 있으니까요!

 

둘째로는, 예수님 이야기를 너무나 열심히 듣고, 노트필기 해뒀다가 너무나 멋진 작품으로 재현해 낸 모범생 마태에게 놀랐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마태의 철두철미한 직업정신도 엿보입니다.

토지세, 지방세, 재산세 등등 항목별로 장부를 꼼꼼히 정리하던 세리의 직업병(?)을

하나님께서는 복음서를 저술하는 데 그대로 사용하시는군요!

 

셋째로는, 2천년 전 유대인의 언어와 정서를 21세기 현대인의 언어와 정서로 재해석해 낸 유진 피터슨에게 놀랐습니다. 이 엄청난 시대적, 문화적, 지리적 격차를 어떻게 이렇게 무난하게 뛰어넘어

Soft landing할 수 있는 지….!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정말 유진 피터슨 교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귀한 선물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미국인의 언어와 정서에 바탕을 둔 유진 피터슨의 글을 다시 토종 한국인의 언어와 정서로 재해석해 낸 제게…. ㅎㅎ 이건 농담인 거 아시죠?

이번에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으로 마태복음 번역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을 통해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더더욱 생생하게 만나시길 기도합니다!

마가복음

4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쓰였다는, 그래서 나머지 세 복음서의 참고서가 되었다는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수행 비서였던 마가가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그래서 그런지, 베드로의 거침없고 직설적인 성격이 마가복음에도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서론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예수님 행적의 진수들을 전해주네요. 마치 너무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 도저히 뜸들일 여유가 없다는 듯이 말이죠.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표현했던 마가는 ‘종의 태도’를 잘 설명해주는 ‘즉시’ 또는 ‘곧’이라는 부사를 많이 사용합니다.

마태복음을 통해서 왕의 가르침(Didache)을 배웠다면, 마가복음을 통해서는 종의 섬김(Diakonia)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즉,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낮고 낮은 종이 되어 오셔서, 모든 사람을 섬기셨던 것처럼, 우리도 ‘종의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께 ‘즉시’ 순종하며 이웃을 섬기길 소망합니다!

마가
​누가복음

누가복음은 4복음서 중에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복음서이기도 한데요, 예수님의 인간적 냄새가 풀풀 날 뿐만 아니라, 사회 약자층(이방인, 여인들, 하층민들,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 이야기도 많이 기록이 되어있어 우리에게 적잖은 위로를 주기 때문이죠. 
 

만약에 누가복음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마리아와 엘리사벳, 예수님의 어린 시절, 향유옥합을 깨뜨린 여인,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마르다와 마리아, 거지 나사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삭개오 등’ 작은 인물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결코 알 수 없었을 거예요. 


특히 누가복음 15장에는 3가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누가는 처음엔 잃은 양(1/100), 다음엔 잃어버린 드라크마(1/10), 그리고 마지막엔 돌아온 탕자(1/2) 이야기를 순서대로 배치해서 하나님의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점진적으로 더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또한 누가의 직업이 의사였던 만큼, 누가복음에서는 병자들의 증상이나 치료과정이 훨씬 더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답니다(누가의 직업병!^^). 
여러분도 누가복음을 통해 한때 탕자였던 우리를 받아주신 따뜻한 아버지의 마음을 느껴 보세요!

누가
​요한복음

요한복음은 다른 공관복음서와 달리, 유독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죠.

요한은 한 치도 망설임 없이 다음과 같은 장엄한 선포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어요. 이 말씀은 하나님으로 나타나셨고,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나타나셨죠.

이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을 위해 준비된, 하나님 자신이셨어요.”

 

다른 복음서에 비해 유난히 ‘예수님의 말씀’이 많이 기록된 요한복음!

그 내용이 너무나 심오하고, 신비로워서인지, 우리의 제한된 두뇌로는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죠(때로는 예수님께서 동문서답하시는 것 같은 느낌도 들구요…).

 

그런데 제가 요한복음을 번역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점은 예수님의 그 많은 말씀에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주제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늘 [기-승-전-“내가 바로 하나님이야!”]로 결론을 맺으시더군요. (어떤 질문에도 동일한 대답을 하시니, 때론 그게 동문서답처럼 느껴졌던 거죠.) 그러면서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를 못 알아본 우릴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얼마나 크셨으면 예수님께서 그러셨을까?’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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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ssage>의 원 저자, Eugene Peterson의 요한복음 서론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창조가 존재로 나타났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소개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이루어진 것이다. 하늘과 땅, 바다와 시냇물, 나무와 풀, 새와 물고기, 동물과 사람…. 모든 것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름 받아 존재하게 됐다.

창세기의 첫 문장에 대응하여, 요한은 의도적으로 ‘구원이 존재로 나타났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소개한다. 이번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모습을 취해, 예수라는 사람을 통해 역사 속으로 들어온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된다. 용서와 판단, 치유와 이해, 자비와 은혜, 기쁨과 사랑, 자유와 부활…. 부서지고 타락한, 죄에 빠지고 병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름 받아 구원받게 된다.

어디서부턴지 일이 꼬이기 시작했고(창세기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있다), 세상은 그저 절박하게 누군가 그걸 바로잡아 주기만 기다려왔다. 그런데 그렇게 꼬였던 게 말씀으로 완전히 바로잡혔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인 예수가 되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구원으로 나타난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그 분 자신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이러한 말씀들과 친숙해진다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들이 생각보다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믿는다’라는 말 한마디가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말들이 쌓여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권위와 중요성이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해결책인 ‘구원’을 강요하지 않으시고, 편안한 대화와 친밀한 관계, 연민의 반응과 열정적 기도를 통해, 그리고ㅡ이 모든 것을 다 아우르는ㅡ희생적인 죽음을 통해 구원을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말씀’을 무시해 버리고 떠나서는 안 될 것이다.”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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