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울 서신
로마서
로마서를 번역하면서 저는 여러 번 놀랐습니다.
첫째는, 구원과 복음에 대해 이렇게 탁월하게 설명을 한 사도 바울에게 놀랐고,
둘째는, 사도 바울의 이 탁월한 논문(?)을 현대적인 감성과 언어로 이렇게 탁월하게 번역을 한 Eugene Peterson에게 놀랐고,
마지막으로는, 그동안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졌던, 그래서 주석서나 강해 설교집만 해도 수 천 권이 되는 로마서가 이렇게 쉬운 책이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구원과 복음은 절대 복잡한 게 아닌, 정말 단순한 것이었어요!
로마서도 가급적이면 한 번에 쫘악~! 읽어 보세요!
우리에게 완전 은혜로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솟구치실 거예요!
고린도전서
이번엔 고린도전서입니다.
이것도 편지인 만큼 단숨에 끝까지 쫘악 읽어보세요~!
그런데 고린도전서를 제가 번역하면서 13장에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정말 하나님이 친히 쓰신 불후의 명작인 것 같습니다!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
정말 압권입니다!!!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를 번역하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그동안 ‘쎈 사람’으로만 생각되었던 사도 바울이 실은 엄청 섬세하고, 소심하고, 사랑이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기술했던 ‘사랑’에 대한 정의를 자신이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고린도후서를 통해 느끼게 되었죠.
그 위대한 사도가, 이렇게 자존심 다 버리고, 애원하면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정도로…. 이다지도 고린도교회 교우들을 사랑했다니…! 정말 감동입니다!
이 감동의 편지, 여러분도 한 번 읽어 보세요!
이번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쫘악~! 아시죠?
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는 마틴 루터가 가장 사랑했던 바울 서신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루터가 “나는 갈라디아서와 결혼했다. 갈라디아서는 내 신부다!”라고까지 고백했다던 갈라디아서!
저도 번역하면서, ‘갈라디아서에는 과연 복음의 진수가 들어있어, 종교개혁을 일으킬 만큼, 힘이 있는 성경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루터의 마음으로 갈라디아서를 한 번 읽어 보세요!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으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복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실 거예요.
에베소서
에베소서에는 그 유명한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죠.
에베소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녀로 입양해주신 하나님,
우리의 구원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와 함께 하나님 말씀으로 풍성한 은혜 누려 보세요!
빌립보서
“난 어느 상황에서건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 주신,
바로 그 분 안에서 난 뭐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여러분도 이 ‘기쁨의 서신’을 읽으시고
말씀 안에서 행복과 능력을 얻어 보세요!
골로새서
<The Message>의 원 저자, Eugen Peterson은 골로새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더군요.
“예수님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분의 삶, 가르침,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배운 사람이라면, 그분을 하찮게 여기면서 그냥 떨쳐버리기는 정말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왜곡된 가르침을 받았다면, 보통은 예수님을 그냥 무시하고 말죠.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 이야기가 ‘최고로 놀랍고 위대한 이야기’임을 직관적으로 알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정말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본인의 ‘위인 명단’ㅡ부처, 모세,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등 역사적 관점이나 개인적 취향 등 다양한 선정 기준으로 만들어진, 예수님과 비슷해 보이는ㅡ의 다른 인물들과 예수님에게 똑 같은 비중을 두는 사람들도 아주 많죠.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중요하긴 하지만, 절대적이진 않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예수님의 명성이 높다는 건 인정하지만, 예수님을 최고로 치진 않는다는 거죠.”
“골로새 마을 크리스천들 중, 일부 사람들도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일종의 ‘우주적 힘’ 정도로만 이해했거든요. 그래서 바울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그들 삶의 중심에 도로 모실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이하 생략)
여러분도 골로새서를 통해서, ‘그 어느 누구도 필적하지 못할, 창조와 구원의 중심이신 그리스도’를 만나 보세요~!
데살로니가전후서
<The Message>의 원 저자, Eugen Peterson은 데살로니가전후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품은 생각으로 ‘현재’를 조각합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현재’라는 일상의 행동과 생각의 윤곽이나 톤을 결정하죠. 만약 미래에 대한 감각이 떨어졌다면, 우린 현재를 무기력하게 살게 될 겁니다.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정서적, 정신적 질환들과 자살 시도가 많이 나타나는 게 사실이지요.”
“크리스천의 믿음은 ‘미래에 대한 강력하고 집중된 감각’으로 나타납니다. 그중에서도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믿음’이야 말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죠. (중략) 크리스천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그것은 바로 ‘미래에 대해 제대로 알고, 그걸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의 실생활에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미래에 대한 믿음’은 현재의 모든 순간을 소망으로 충전해줄 수 있답니다! 만약에 우리 미래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믿음으로 규정된다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우리의 모든 걱정과 염려들이 상영될 스크린 공간은 거의 없겠지요.”
여러분도 데살로니가전후서를 통하여 ‘미래에 대한 강력하고 집중된 감각’을 가지고 ‘소망이 넘치는 현재’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디모데전후서
환자가 돌팔이 의사를 만난다면?
그건 정말 너무 끔찍한 일이죠!
이게 꼭 의사와 환자 얘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The Message의 원 저자, Eugene Peterson은
디모데전후서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릇된 방향으로 빚어진 영적 지도력,
그것은 사람들의 영혼에 쥐약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린 디모데전후서를 읽어야 한다.
바울은 올바른 영적 지도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자신의 삶과 편지들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여러분이 꼭 목회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디모데전후서를 지침으로 삼아, 신앙의 자녀나 후배, 혹은 영적 멘티들에게,
성경을 교과서로, 여러분의 삶을 참고서로 하여,
‘선한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디도서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섬의 목회자로 남겨두고 오면서, 마음이 많이 쓰였던 것 같습니다. 디도에게 이 ‘목회 지침서’를 보낸 걸 보면 말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자신이 평생 갈고 닦아 체득한 비방을 아들에게 가르쳐 주듯, 바울은 너무도 자상하고 세심하게 디도에게 충고를 해주는 군요.
전 디도서를 번역하면서, 디도서는 목회자 뿐만 아니라, 교회의 일꾼들, 그리고 일반 성도들이 갖춰야 할 덕목들이 골고루 다 들어있는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도서를 통하여,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자세와 덕목이 무엇인지 깨닫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빌레몬서
미국의 노예해방운동을 일으켰던 빌레몬서!
단 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짧은 빌레몬서가 인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성경이 될 줄은 사도 바울도 예상치 못했을 겁니다.
<The Message>의 원 저자, Eugene Peterson은 빌레몬서 서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반응하는 모든 행위들은 ‘나비효과’를 일으킵니다. 가족, 이웃, 친구들, 그리고 공동체에 반향을 일으키지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우리 언어를 바꾸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일상의 관계에 영향을 주고, 하나님을 향한 소망은 우리 일에 배어들기 마련입니다. (중략)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신앙이 한낱 환상에 불과한 건 아닌지, (최악의 경우) 위선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중략)
“빌레몬과 오네시모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서, 바울이 보낸 이 편지에 ‘투 탑 주연’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이런 급진적인 사회신분적 변화까지 일으킬 수도 있음’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었죠. 하지만 그 두 사람 다, 이 편지를 통해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급진적 사회 변혁의 결과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빌레몬서를 번역하면서 ‘행동하지 않는 신앙인은 세상의 빛도, 소금도 될 수 없다.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빌레몬서를 통하여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을 살아내심으로써,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